출판사와 작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자리잡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만화창작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잡지연재와 단행본 출간이 연계되어 있는 일본의 상업만화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지요.

물론, 처음부터 서점용의 단행본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고, 신문연재나 대본소용 만화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런 경우들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한국만화계에서 만화작가가 작품을 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잡지연재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이것을 단행본으로 묶어서 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작가들의 숫자에 있어서는 그런 경향이 분명합니다. (이번 호의 다른 꼭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판이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90년대의 특수성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이번 호 두고보자의 작가인터뷰는 잡지-단행본 시스템에서 작가의 위치, 전속과 프리랜서의 경계선을 오가는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한국만화판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실제로 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인 만화가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는 것은 과연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논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민감한 문제에 대한 인터뷰를 제안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경황없는 와중에도 선선히 응해주신 양여진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양여진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드리자면 ...

2월 13일 생으로 94년 댕기에 '호랑이랑'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데뷔. 이후 댕기, 밍크, 내 친구들 등의 잡지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깨끗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가족은 남편과 두 남매 서현과 이아. 주요작품으로는 폼페이 최후의 날, 일루미나, 수호령, 패자부활전, 작전타임, 컴온 등이 있습니다.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은 월간 해피 8월호에 첫회가 나간 '세인트.마리' 입니다.

작가 홈페이지 Myocat (
http://myhome.naver.com/myocat/)

인터뷰는 초여름의 며칠 동안 수 차례의 메일 교환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과정에서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실수 혹은 오해에 관한 책임은 두고보자에 있습니다.  

(** 인터뷰를 끝까지 읽으시는 독자분들에게 특별한 보너스가 있습니다. ^_____^)

 


[두고보자] 안녕하세요. 요새 바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평범한(?)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우선 ... 모든 작가 분에게 한 번씩은 해봄직한 질문입니다만 ... 만화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여진] 어렸을 때 많은 만화를 접하진 못했지만,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스토리 쓰는 것도 무지 좋아했구요.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는 분의 소개로 애니메이션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 후 4년 간 동화, 원화, 배경클린업 등을 하며, 체계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상하관계가 분명한 애니메이션 회사의 분위기가 싫어서(남녀차별도 대단했습니다) 대학졸업 후, 출판만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원고를 그려, 출판사로 들고 갔고, 비웃음을 확실히 산 후, 그 쪽 소개로 원수연 선생님께 2달간 배웠습니다. 약 1년 후 댕기에서 데뷔했지요.

[두고보자] 다른 문하생경력이라든가, 동호회 활동 같은 것은 ...

[여진] 없었습니다. 원선생님께도 2달간 배운 것이지, 문하생 생활을 한 건 아니거든요.

[두고보자] 94년 댕기에서 데뷔하셨는데 그 때 이야기를 조금만 부탁드립니다.

[여진] 청조출판사[1]에서 단행본을 내기로 했으나, 계약이 무산되어 (계약금을 돌려주느라) 엄마께 빚을 져서 돈이 몹시 필요했습니다. 집 근처에 어린이회관이 있었고, 거기에 댕기 편집부가 있어서, 단편 하나를 그려들고 무작정 찾아갔죠. 역시 실컷 비웃음을 샀지만, 당시 편집부장님<오세론 씨>이 제가 특이한 스타일의 스토리를 구사한다며 코믹물을 하나 그려오라고 하셨고, '호랑이랑'[2]이란 만화를 다시 그려갔습니다. 그게 제 데뷔작입니다.

[두고보자] 초기에는 지금보다 밝고 코믹한 경향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최근에는 뭘까 좀 터프한 분위기의 주인공들도 있구요 ... 항상 바뀌고 계신데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여진] 아뇨. 어두운 작품이 더 많았습니다. 밝은 작품이 기억에 남으신 것 아닌지. 전, 코믹물에 강하다고 모두들 말씀하시고, 사실임을 인정합니다만, 어렸을 적의 경험(자폐증, 자살기도들)때문에 내면은 어두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보통 출판사측에서 코믹을 원하니까 그런 만화를 군소리 없이 잘 그려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하고싶은 장르는 심리 서스펜스입니다. 허무한 새드엔딩도 무척 좋아합니다. 터프한 분위기라 ... 그것은, 제 성격이 반영된 거죠. 맺고 끊는 게 확실한걸 좋아하거든요.

[두고보자] 저의 허접한 기억이 뽀록나는 군요. --;;; 발표하신 작품들을 보면 윙크나 화이트에 실으신 적도 있고 밍크에서도 많이 작품을 내셨는데 ...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시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여진] 아주 짧은(12페이지였나?) "새벽 1시30분, 줄리아..." 라는 게 있었죠. 댕기에서 펑크 때움 용으로 그렸던 건데, 불법취업을 한 필리핀 여성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해 많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거든요.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음 ... 찾아보니 댕기 96년 4월 15일자로군요.

[두고보자] 댕기, 밍크 등 일반 순정지에 연재하신 작품도 있고 '내 친구들'[3]에 연재하신 작품도 있습니다만, 차이가 있을까요? 작품에 종교적인 무언가를 반영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으신지요.

[여진] 저는 카톨릭에서 꼽는 4대 순교소설(벤허. 쿼바디스. 폼페이 최후의 날. 파비올라)중 두 편을 각색하여 만화로 연재했고, 또 연재중입니다. 카톨릭 신자로서 약간의 봉사를 겸해서 하는 것이지요.(고료가 많이 차이나는 거, 아시죠?) 신자이지만, 종교에 관한 한 너무 꽉 막힌 생각을 사람들이 갖고있는 점이 안타까워서 약간의 비판적 시각을 갖고 그리고 있는 중 입니다만. 즉, 종교물의 탈을 쓴 제 자신의 사상전달책 이랄까. 절대적인 종교에 대한 순종이나, 순결관, 금기에 대해선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더불어 잘 사는 인간세상을 보고 싶어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 전 종교자체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친숙하게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게 한 종교를 알리기에 더 효과적인 일이 아닐지..옛말에 가랑비에 옷 젖는 거 모른다고 하죠? 구태의연한 인간초월적 성인전은 종교에 경외심을 갖게 하기 보다 소외된 자에게 더 큰 상처만을 안겨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카톨릭 안에서의 문제(여성의 사제 권한이 없는 것. 이혼한 신자에 대한 파문. 동성연애자에겐 세례조차 베풀지 않는 것)도 빨리 고쳐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지의 경우 더 어린 독자층에 맞춰져있어서 약간 순화시켜 그리는 것말고는 차이는 없습니다.


- '내친구들'에 연재했던 작품들. 다솜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두고보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서 ... >.< 저도 밍크, 해피, 파티의 애독자입니다만, 최근에 해피에 새로 연재를 시작하신 일 때문에 기존의 연재를 타의에 의해 중단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 인터뷰를 제안하게 된 것도 그 소식 때문입니다만, 그 일의 경과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여진] 우선 작전타임이 끝나갈 때, 밍크 팀장에게 윙크에도 연재자리를 하나 내 줄 수 있느냐고 말씀을 여쭈었죠. "내 친구들"의 연재가 다음해에 끝나기 때문에 다른 연재를 하나 확보해 둬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일하고 있는 서울문화사의 잡지에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에 윙크에서 여름특선단편 청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팀장 말로는 밍크의 주력작가가 윙크 단편이나 하고 있으면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역시 연재를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구요.

곧 만화부 부장에게서 허락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팀장을 통해 들었습니다. 전, 지금 해피에 연재하는 세인트.마리 를 염두에 두고 스토리와 인물구성을 하며 밍크에 다음 작품인 컴온도 준비를 해서 아이를 낳은 후 곧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컴온은 초반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작전타임만큼의 인기를 바랬던 편집부는 실망을 했는지, 곧 40페이지로 잡았었던 연재분량을 2회 36페이지, 3회는 32페이지 정도로 줄이기 시작했구요. 윙크에서도 감감무소식이라 제가 직접 윙크의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오** 기자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그 기자분은 부장님의 말씀을 들어보고는, 윙크엔 지면이 없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실망한 저는 또 기다려보다가 다시 연말부터 해도 상관이 없으니, 약속한 지면이 확보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연말까지도, 그 다음에도 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들었습니다.

[두고보자] 윙크팀장님은 오**기자님이 아닌 걸로 ...

[여진] 왜 제가 윙크 팀장에게 묻지 않았냐면 ... 예전, 댕기 때부터 그 팀장님은 제 그림을 싫어했고, 윙크 팀장이 된 후에도 강인선 부장(전의 부장)님이 o.k한 제 원고를 3번이나 그냥 돌려보냈던 적이 있거든요. 솔직히 그 분과는 얘기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러는 동안에도 꾸준히 대원에서는 제게 섭외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밍크 안에서 제 위치가 불안정해지고 있었고, 새로운 연재를 주지 않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는 듯하여, 전 고민하다 대원과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화이트가 폐간한 대원은 "이슈는 화이트 작가까지 끌어안느라 지면이 없고, 해피를 앞으로 주력으로 밀 생각이니 해피에서 연재를 하라"고 했습니다.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동지 2군데서 연재...? 일단 밍크 측이 반대할 테고, 세인트.마리는 아동지에 내기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 밍크의 담당기자에게 월간지 연재 하나만으로는 화실 운영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고, 해피 쪽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다른 연재물을 확보 해야하는 난 어떻게 해야하냐는 둥... 말을 흘려보았지만, 밍크 쪽에선 새 연재를 하려고 하는 나의 사정은 이해하겠지만, 해피는 절대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대원도 해피연재만을 제게 계속 종용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밍크에서 계획되었던 제 사인회가 취소되었습니다. 밍크는 서점 측 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했지만, 같이 사인회를 하기로 했던 다른 작가는 다른 사인회에 참가했던걸 알게 되었고, 일종의 허탈감 내지는 배신감을 느꼈던 저는 해피에 새 연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연령대가 비슷한 잡지에서 동시연재를 하는 작가들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한가지 이유 였구요. [4]

새연재 예고가 나간 후, 밍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에서 김** 부장님은 아동지 두 군데서 연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전, 두 군데서 하는 작가도 있다는 걸 말씀드렸지만, 서울문화사에선 용납되지 않는다고 답을 하시고, 밍크만 할건지, 해피로 갈 건지를 정하라고 했습니다. 전 둘 다 하는 건 안되냐고 했지요.

부장님은 "여진씨랑은 더러워서 아무도 일 같이 못해먹겠대. **이가 화가 나서 더 이상 여진씨 담당 못하겠대."라는 얘길 했습니다. 그건 제게 나가라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해피를 하겠다고 했더니 전화를 끊더군요.

이것과 ... 이것 ...

[두고보자] 그러니까 '연령대가 비슷한 다른 잡지에서 연재하는 것'을 이유로 삼아 연재를 중단시킨 셈인데,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출판사에서 연재중단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여진] 전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반응이 안 좋으면 정리하라는 소리가 나오겠지 ... 정도로 혼자 생각은 했습니다.

[두고보자] 연재중단을 시킬 때, 출판사에서 제시한 다른 근거는 없었나요?

[여진] 독자연령층이 같은 만화잡지에 2개를 연재하는 것은 자사 측에선 용납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다른 출판사에선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더니, 우리 출판사에서는 그런 법이 없다고만 얘기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두고보자] 윙크 창간을 전후로 하여 한동안 작가가 출판사에 전속되는 체제가 생긴 적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공식적인 전속관계는 없는 상태이지만, 여러 잡지에서 하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제한들이 있는지요.

[여진] 글쎄요. 저도 이 일이 있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공모전 당선신인에겐 약간의 제한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저도, "웬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는 소리말고는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두고보자] 이 번에는 타잡지 동시연재를 문제삼았지만 만약 그런 '건수'도 없이 인기가 저조하다거나, 아니면 편집부와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로 연재(조기)중단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 출판사 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궁금합니다.

[여진] 그런 경우가 물론 있죠. 저의 경우는 약 2회 안에서 빨리 마무리를 지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아무소리 없이 내가 죄인이다 ... 하는 맘으로 따라야 하구요.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출판사에서는 꽤 단도직입적으로 작가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편입니다.

[두고보자] 이번에 출판사에서 작가의 원고를 돌려줄 수 없다는 제스쳐를 취한 때문에 문제가 커진 느낌이 있습니다만, 원고 보관에 관해서 출판사와 합의나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까? 별도의 합의가 없는 것이 관례라면 (다른 작가 분들의 경우도 포함해서) 이전까지는 어떤 식으로 원고를 보관, 처리 해왔는지요?

[여진] 그냥, 약 3년의 판권기간이 만료되면 모아서 택배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이 그런 식으로 일해왔기에 이번 상황이 닥쳐서야 그런 문제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두고보자] 만약 출판사에서 원고의 전체 혹은 일부가 유실되었을 경우 책임소재라든가 손해배상 등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지 ...

[여진] 제 원고에 대해선 그런 일이 없었고, 다른 작가의 경우, 얘길 들어보면 고스란히 작가의 손해로 남는다고 들었습니다. 작가의 양해 없이 컬러원고를 독자에게 선물로 주는 일조차 있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출판사가 부도가 나면 작가의 원고가 제3자에게 차압당하는 일도 있고... 참, 한심하지요.

[두고보자] 작가의 양해 없이 원고를 처분해버리다니 당황스럽네요. --;;; 이번에 원고를 안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아마도 후속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둔 때문인 듯 합니다만, 단행본 계약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요. 만약 작가가 (다른 곳에서의 출간을 위해) 단행본출간을 거부하는 경우 불이익 같은 것이 있을까요?

[여진] 아직 단행본 계약을 정식으로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 약 3년 정도의 출판권이 출판사에게 주어지고 인세협약 등이 있습니다. 단행본을 타사에서 출판하려 하는 경우엔, 들어본 바에 의하면 약간의 트러블이 있은 후, 작가의 뜻에 따라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고보자] 출판사가 허락해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상식적으로는 ... 그런데, 계약을 정식으로 하신 적이 없다면 ... 대부분의 경우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출판사에서 임의로 인세비율 등을 결정하여 진행해버린다는 뜻 인지요. 이런 게 만화출판계의 관행처럼 되어 있다면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여진] 네.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인세로10%를 받는 다는 것 만 알고있죠. 그게 관행이고,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따랐는데, 이번 일로 법적인 내용들을 남긴다는 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단편집 '패자부활전'과 '수호령'

[두고보자] 원고를 돌려 받게 되면, '컴온'을 단행본으로 완결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여진] 예. 비록 연재고료는 포기하고 그리는 것입니다만, 이 나라 청소년들에게 양여진이 흐지부지한 작가라는 생각은 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스토리를 처음부터 완결까지 정하고 그리는 사람입니다. 작전타임도 인기가 있었지만, 할 얘기만 풀고,2권으로 완결 시켰습니다. 인기 없어서 스토리를 축소시키고, 인기 많아서 질질 끄는 건 작품의 질을 가장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컴온도 예정대로 만들어놓은 스토리를 만화로 다 선보이고 깨끗하게 끝을 낼 예정입니다.

[두고보자] 이번 일에 대한 대원출판사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여진] 대원에서는 생각지 않게 일이 너무 심각해져서 (퇴출되는 것은 그 쪽도 예상 못했던 일 이었기에) 지금 난감해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생각하여 컴온 단행본 부분도 그 쪽이 먼저 제시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일로 저나, 대원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만화를 진행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법적 문제로 커지기 전에 일이 잘 풀리기를 대원 측에선 내심 바라겠지요.

[두고보자] 출판계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원고료와 인세지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여진] 서울문화사의 경우, 7월에 나오는 8월호의 고료는 8월 말쯤에 나오는 상황이고(사실 6월에 그린 원고죠), 인세는 정말 심각하게 늦게 지급되고 있습니다. 6개월 늦는 건 예사이니까요. 그 탓에 생활이 계획적이지 못하여 고민입니다. 카드값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될 뻔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도 관행의 한 부분이 되가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내 친구들 쪽도 늦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그냥... 출판계는 원래 -여유를 부려서 돈이 잘 돌 때 일괄지급...-그런 생각들이 지배하고 있는 듯한..

[두고보자] 보통 순정작가들의 원고료가 소년지 작가들의 원고료보다 낮게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현재 만화계의 상황(잡지판매량이라든가 독자들의 호응도[5]을 볼 때 현실과 맞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진] 글쎄요. 지금까지는 출판사의 "순정만화는 내용상 독자층이 아직 좁을 수밖에 없어서..." 운운하는 설명에 고개만 끄덕여왔다고 해야겠지요. 지금은 독자층을 늘릴 수 있는 중성적인 만화 쪽으로 변화를 시도한 뒤 고료책정이 다시 되었으면 합니다. 클램프라든가 ... 일본에선 그런 식의 시도가 성공했다고 봅니다. 먼 옛날부터의 악습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남아 내려오지만, 빨리들 자각하여 고칠 건 고쳐야겠죠?

[두고보자] 꼭 이번 일만이 아니더라도 작년 나인의 변신과 관련하여 흘러나온 이야기들도 그렇고,[6] 출판사와 작가의 관계에 문제가 많이 있는 듯합니다. 특정 출판사의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요. 출판사의 작가에 대한 처우가 어떤 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싶습니다.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구요.

[여진] 우리나라는 잡지 활성화가 잘 되어있지 않고, 잡지를 사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럴 만한 매니아 층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이야기지요, 이건 고급 "노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꼭 출판사를 탓할 문제는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사는 게 워낙 어려운 관계로. 사회전반으로 여유가 생기면, 해결될 일 이라고 봅니다. 독지가가 나서서 매니아층을 충족시킬 잡지가 나와준다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힘들겠죠. 즐기는 문화의 다양성을 사람들이 이해만 해 준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문화후진국 소린 안 들을 것 같습니다.

[두고보자] 조금 가외의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 그러니까 작가대접을 해주고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잘 지원해주는 그런 편집장이 있다면 칭찬릴레이 삼아 추천해주실 수 있겠는지요.

[여진] 밍크의 장지영 팀장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작품을 보는 눈도 있으시고, (상업적 판단이지만)일단 작품이 모이면 단편집이라도 내 주려 노력하는 분이지요. 펑크가 날 듯한 순간에는 끊임없는 격려도 주십니다. 이때까지 펑크 없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 분의 힘이 컸습니다. 회사와 만화가의 이익을 잘 저울질하고 두 쪽에 다 충실한 분이십니다. 이번 일에도 그 분이 회사의 법적인 입장을 부장님과 제게 잘 설명해주시고 깨끗하게 처리되도록 노력해주셨습니다. 출산휴가 중이신 그 분께 문제를 일으켜 죄송하단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두고보자] 어쨌든 힘든 일이 많으셨는데 새연재를 시작하시게 되어 다행입니다. 새로 시작하신 작품 세인트.마리는 어떤 작품인지요?

[여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선악 지배구조에 대한 파괴를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신이 만든 세상을 인간은 감히 인간의 법을 만들어 단죄를 하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얘기들을 하죠. 그런 종교의 폭력에 대한 제 작은 반항이라고나 할까요... 평범했던 주인공은 알고 보니 악의 중심세력에 위치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어서 타의로 인해 서로를 해쳐야하는 운명입니다. 그게, 과연 옳은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최고선인지... 오랜 세월 인간의 상식을 지배해왔던 선에 대한 개념 등을 한번 흔들어 생각해볼 자유를 선사해 드리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사랑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제 철학도 들어있고요.

이번 해피 8월호 표지는 '세인트.마리'의 임형신과 서윤하 ...

[두고보자] 동호회 '나비'를 통해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 소개 부탁드리구요. 덧붙여 프로작가가 데뷔 후에도 계속 아마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여진] 나비는 저와 제 어시스턴트들이 독자의 반응을 생각하기 이전에, 자유롭게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해나가는 자유만화게시판입니다. 프로활동을 하는 저와 곧 프로로 나갈 제 후배들의 작은 휴식공간입니다. 아시다시피 만화란 상업예술이므로 돈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예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일을 하는 우리들로써는 우리의 자유감성도 표현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자유로운 나비라는 이름을 붙이고 각자, 순수창작에도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프로 활동을 하면서 나비활동도 지속시킬 예정입니다. 아마추어 동아리는 돈을 벌고자,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비출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잡지와 단행본으로 돈을 벌어서 나비에 투자하며 우리는 마음이 참 가볍고 기뻤습니다. 어느 직업이건 비상구가 있어줘야 본 일에도 다시 힘을 얻어 매진할 수 있는 것이겠죠? 판매는 아카때 하고, 이후, 통신판매도 할 계획입니다.

[두고보자] 1999-2000년을 즈음하여 여성작가들의 결혼이 많았습니다. 여성작가로서 결혼생활과 만화창작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만 어떤지요.

[여진] 솔직히..정말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지금 유럽보다도 떨어져서 곧 출산장려책을 써야한다는 것 아시지요? 사회의 몰이해와 무관심, 기성세대의 무지한 여성관은 많은 이 시대의 능력있는 여성을 단순가사노동 근로자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정신력 하나로 하루 3시간도 안되는 수면량을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습니다. 친정이나, 시댁에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거죠. 그런데,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어서 딸이나 아들의 희생자가 되어야합니까? 언제까지 여성들은 세대를 거쳐가며 이 큰짐을 "모성"이라는 허울좋은 이름 때문에 노예처럼 운명으로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까? 국가적 정책이 너무도 시급합니다. 그리고, 부부란 상하관계가 아닌 파트너관계로 빨리 인식이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가사노동에, 아이 돌보기, 창작... 저도 피곤을 느끼는 인간이고 굉장히 이 현실이 슬프답니다.

[두고보자] 초등학교 2학년 때 귀신을 보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라디오에 나오셔서... --;;;) 지금도 보십니까?

[여진] 하하! 들으셨군요? 저의 영적 능력은 탁월해서 거의 영매 수준이지요.

지금도 가끔 보고, 느낍니다. 유령이 올 때면 사향냄새가 나지요. 돌아가신 분들이 저를 통해 이승에 하고싶었던 얘기를 들려주시기도 하고, 종교적 딜레마에 빠졌을 땐 마리아님이나 예수님이 격려도 해 주십니다. 신기하죠?

사실 온 가족이 카톨릭인데, 저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요. 꿈에 예수님이 나오셔서 직접 인도해 주셨거든요. 그리고, 그리 열성적인 신자는 아니지만 신에 대한 믿음 하나는 확고합니다. 제가 성실히 생활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늘 남을 위해 기도하면 거리에 나가 예수 믿으라고 포교하는 것보다 더 큰 선교가 되는 것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두고보자] 하하 ... 웬 오컬트 분위기가 ... --;;; 이번 대원신인공모 해피부문에서 강이진님이 가작으로 당선하셨다고 하는데 축하드리구요. 선배작가로서 평가 혹은 격려를 해주신다면.

[여진] 이진이는 그림 실력 면에서 아주 탁월합니다. 이때까지 제가 가르쳤던 후배들 중 최고지요. 천재라고나 할까요. 인체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너무 자기 그림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만화가가 발전을 계속하려면 객관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일 이지만. 그림체도 상업만화를 그리니까 시대감각에 맞게 자꾸 바꿔줘야 하구요. 이진이가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더 향상된 캐릭터를 계속 보여줬으면 합니다. 스토리면에서도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되지요.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스토리는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죠.

아직, 나이가 어린 이진이입니다. 겨우 20살이지요. 전 데뷔가 너무 빠른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만... 그건 그녀의 몫입니다. 제가 건드릴 부분이 아니지요. 세상을 많이 겪고, 많은 경험을 하면 이진이의 작품은 최고의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많은 고생과 좌절이 있을 겁니다. 데뷔는 개선문이 아닌, 고생문으로 들어서는 시작입니다. 바로 앞을 보지말고 먼 미래를 보고, 꿈을 잃지 않는다면 만화계에 잊혀지지 않는 이름을 남기는 대작가가 될 것입니다.

천재니까요! 선배 중에 제가 있었다고 해 준다면 정말 영광이겠지요.

[두고보자] 장시간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위의 질문에 들어있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여진] 이런 주저리를 읽어줄 분이 계시다는 게 너무 행복할 따름입니다. 열심히 해서 좋은 작가였다고 독자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네요. 감사했습니다. 도움이 되셨을 런지... &#52197;..

[두고보자]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꾸벅~

 


1 - 청조는 '파랑새코믹스'로 유명한 순정만화출판사. 단행본을 주로 출간했으며 순정잡지 칼라를 발간하기도 했다.

2 - '호랑이랑'은 '호랑이랑 사자랑 토끼랑~' 이런 것이 아니라 '여우같은 여자, 너구리같은 남자' 정도의 뜻

3 - '내 친구들'은 90년에 창간된 카톨릭계 월간 아동만화지로서 만화잡지 전체로도 아이큐 점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잡지. 아마 이 잡지에 게재된 것으로 (만화독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강경옥의 '거울속의 수수께끼' 이겠지만, 그 외에도 이명신, 나예리, 우양숙 등 여러 순정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4 - 같은 연령대의 작품에 연재를 병행하는 경우는 나예리의 '글로리 에이지'(케이크), '10/50'(이슈), 박은아의 '다정다감'(이슈), '불면증'(주티) 등이 있다.

5 - 잡지별 인기도는 이곳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6 - 이 부분에 관하여는 두고보자 1호의 김진태 작가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을 듯.


 

[] 특별게재 - 두고보자 독자들을 위한 양여진의 자선 단편 "새벽 1시 30분 줄리아..."

인터뷰 중에 언급된 "새벽 1시 30분 줄리아..."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댕기 게재후 단행본화 되지 않고 있던 것으로 양여진 작가의 허락을 얻어 두고보자에 게재합니다. 좋은 작품을 허락해주신 작가분께 감사드립니다.

만화를 보기 위해서는 Acrobat Reader가 필요합니다. 용량이 상당하므로 모뎀접속자분들은 인내심을 발휘해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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