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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3 두 개의 여성만화, 작품리뷰 « 이전글 | 다음글 »
 
[도깨비신부] 말리 - 엄마랑은 다르게 살아야 해
| 2004년 09월 19일에 깜악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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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신부](미완) / 말리
 연재 : 격월간 허브 2004-연재중 (3권분량부터)

 단행본 : 세주문화(1-2) / 허브(1-3)

 

 

 


할머니는 혼자서 처연히 죽었고, 사람들을 위해서 착하게만 살았는데도 죽어서 묻힐 자리도 없다. 엄마는 아버지의 몰이해 속에서 미쳐 죽었다. 그 아버지가 나쁜 사람도 아니었는데도, 그는 엄마의 고독과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독약만을 주입한 꼴이었던 것이다. 그럼 딸은?

[도깨비신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요컨데 80년대 이후 여성만화 혹은 순정만화가 암암리에 다루었던 여성들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나는 할머니, 엄마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딸이 바라보아야 할 역할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깨비신부]의 미덕으로 지목되는 것은 한국적인 무속소재를 상당힌 노력으로 만화화했다는 점, 그리하여 일본만화와의 뚜렷한 변별점을 그었다는 점이라고 언급되곤 한다. 안정되었지만 정확하게 맥을 짚고 가는 스토리와 연출력 등이 부가적으로 언급된다든가.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도깨비신부]가 가지는 미덕은 위에서 언급된 미덕을 상회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서 여성에로 이어지는 감정과 세상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세대 간 특성의 문제를 상당한 힘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부분이다. 작가가 무속인 여성삼대의 이야기를 묵묵히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들의 대중예술이었던 순정만화에서조차도 외면해왔던 부분이었다.

가문과 그것의 대물림이라는 문제는, 지금까지는 모두 남성의 영역이었다. 문학에서 박완서 등의 맹진을 제외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척박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딸은 엄마와 닮아 있고, 엄마는 할머니와 닮아 있고, 딸은 할머니와도 닮아 있다. 지금까지 여성의 자리는 언제나 한국사회의 무덤이었다. 그들은 죽었거나 사회적으로 '살아있지' 못했다. 이것을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은 무속이라는 소재이다. 한국에서 여성에게로 전승되는 그 특정한 영역이다. 그리하여 이 만화가 무속을 선택한 것은 특별히 '한국적인 소재'라기 보다는 그것이 한국에서 그려낼 수 있는 온전한 여성적 대물림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와 다르게 살아야 한다, (할머니와 엄마도 딸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엄마는 죽었다. 그것도 히스테리컬하게, 미쳐서 죽었다(고통스럽게도 이것은 매우 한국적인 리얼리티를 가진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은 유시진이 [쿨핫]을 비롯한 자신의 만화에서 언제나 그려왔던 소재이지만, 그의 여주인공은 오히려 아버지로부터의 대물림에 강박되어 있다. 엄마는 "죽은 엄마"라는 트라우마로만 존재하며, 모성적 흐름은 단절되어 있다. 주인공들은 그래서 완전히 혼자 있다. 그것이 유시진의 주인공들에게 끊임없이 냉랭한 독백을 반복하게 하는 이유이며 안으로 '닫히게'하는 이유일 것이다.

"엄마는 죽었다"라는 설정은 새로 태어난 70년대 이후의 세대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세상에 진출할 때, 할머니의 경험, 엄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암암리에 깔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엄마는 집 안에서 가끔 히스테리를 부리는 가정주부일 뿐이다. 딸이 세상에 나가 직장에 취업을 하고 겪는 문제는 윗대의 모성전승으로부터 단절된 종류의 것이다.

딸이 겪어야 하는 문제는 생리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윗대의 엄마들과의 공유점이 거의 없는 것이다. 결혼한 이후에 엄마와 같은 삶을 살 확률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 당신은 그래도 다르게 살려고 하는 딸이 아닌가. 그래서 순정만화에서조차도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는 모두 죽어 있다. 이것은 남성만화들이(특히 한국의 남성만화들이)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애증과 대물림을 반복하는 설정을 구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깨비신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러한 여성적 전승의 흐름을 살려냈다는 점, 그래서 그의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해야 할 여성-선대로부터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무속이라는 소재를 채택하였다고 해서 모두 이러한 여성삼대의 경험을 그려내는 만화가 당연히 나온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말리가 한국의 여성만화에서 이루어낸 가장 큰 성취는 - 아마도 이러한 부분일 것이다. "너는 너의 할머니, 너의 엄마와 닮아 있다"는 부분 말이다. 그것은 이제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의식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와지기 시작한 시기인 2000년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을 의식하기 전까지 나는 [도깨비신부]를 한국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 정도로 생각해왔지만, '한국적으로 완성도가 높은'이라는 말은 이제 다르게 여겨지게 되었다. 만화의 환타지가 담아 내는 리얼리티의 문제 - 그리고 현실 속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들의 문제, 여성들 고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화였다. 작품이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세대적인 흐름을 언급하자, 이제 윗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딸의 문제는 더욱 도드라지게 보인다. [도깨비신부]의 신비는 할머니처럼 착하기만 하게, 고독하게, 전통과 인습에 얽메여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엄마처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미쳐 죽는 삶을 살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신비는 단절된 세대가 아니라, 윗대의 여성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순수한 감정과 힘을 자신의 내면에서 자각하고 있다. 그녀의 뚜렷한 자의식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모성으로부터 물려받은 뚜렷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캐릭터가 - 있었던가?

이러한 전에 없던 설정과 캐릭터를 하나 스스로 구성하는데, (아마 이 부분에서 그녀가 동종의 만화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니면 작가 스스로 이러한 부분을 태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독자는 그냥 작품을 보면 된다. 그러나 [도깨비신부]를 한국의 여성만화의 흐름으로부터 빛나게 하는 부분은, 분명히 이러한 부분이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자신만의 가치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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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신부]는 여성무속인 집안이라는 특이하고 구체적인 설정을 통해 여성 보편의 문제를 노력을 가득 들인 완성도로 담아 내고 있다. 캐릭터와 설정의 특이함으로부터 보편적인 현실 속 삶의 문제를 담아낸다는 것은 문학이든 영화든, 혹은 만화든 작품 내러티브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을 제대로 구사하는 만화작가가 많았다고는 볼 수 없다. 말리와 [도깨비신부]는 이러한 부분을 해냄으로서 리얼리티와 만화로서의 재미를 동시에 획득했다.

그 딸이 이제 사춘기다. 사춘기의 불안한 암흑은 보여서는 안 될 것도 보이는 시기라는 점에서, 더욱 무속이라는 소재와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가 지나면 그녀의 여성적 전승은 더욱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너는 그녀들의 딸이다. 무속의 시각에서, 그녀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나의 발전적인 긍정이 이루어진다.

오늘밤은 밥 말리나 듣자. No Woman No Cry.


○ 작품목록
[도깨비신부] 2-미완/중단, 세주문화, 2002-2003
[도깨비신부] 3--미완, 허브, 2004-


 

Comments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Posted by: 도깨비 at 2004년 09월 19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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