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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3 두 개의 여성만화, 작품리뷰 « 이전글 | 다음글 »
 
[색녀열전] 장차현실 - 답습된 성구도의 여성주의만화?
| 2002년 11월 16일에 메리메리 쓴 글
 
 

 

 

 [색녀열전](완결) / 장차현실
 연재: 페미니스트저널 이프(1997-2002)
 단행본: 이프(if), 2002 1999

 

 

 

 

 


[색녀열전]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 연재된 만화로, 제목처럼 '밝히는' 색녀들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첫날밤을 치르는 세 자매의 사연, 부인의 엉덩이가 다른 남정네에게 보이는 것에 화를 냈다가 도리어 혼나는 남편, 시아버지에게 치마를 걷고 엉덩이를 내밀어 인사하는 며느리의 이야기. 이프의 전편집장 박미라씨가 전국에서 모은 설화와 민담자료집에서 ‘씩씩하고 밝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발췌,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그 가운데 작화를 담당한 장차현실씨가 발랄하고 재미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택해서 그렸다고 하니 만화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프에서 줄곧 여성들의 욕망을 해방시키자고 주장을 해 온 맥락을 따라 [색녀열전]도 '우리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성을 즐겼고 자기주장을 해왔으니 우리도 당당해지자' 고 말한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성을 즐기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상상력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터에 모여서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어젯밤 누구네 집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대’라고 수군대는 정도의 이야기에 계몽적인 결론을 첨가한 정도라는 거다. 민담이나 설화에서 발췌했기에 더욱 그런 인상을 주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페미니즘적인 만화인 만큼 [색녀열전]에는 남자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당당함이란, 본처와 첩을 두고 있는 남자가 첩에게만 잘해주다가 혼이 나서 결국에는 밤마다 두 여자들에게 모두 잘해줘야 할 처지가 돼서 혼자 힘들어한다는 식으로, 좀 허무하다. 혹은 시아버지 앞에서 성기를 내보이는 며느리나, 무서운 산길에서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치마를 걷고 허리를 구부려서 엉덩이와 성기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무서운 동물로 위장하는 여자 이야기처럼 금기된 부분을 당당하게 드러내자는, 다소 어이없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했다니, 그 자체로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성에 대한 걸쭉한 육담들은 언제 어디서나 성별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그러니 설화와 민담에서 잘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게다. 단지 남성들 앞에서 ‘처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됐던 것 뿐. 여성이 이야기의 발화 주체로 등장하는 상황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여성들로 구성된 일상영역에서는 자주 일어난다. 만일 ‘여성동아’ 등의 여성지 뒷부분에 실려 있는 부부의 성 경험담을 여성의 입장에서 각색하고, 결론에 성평등이라는 계몽적인 결론을 덧붙이면 [색녀열전]의 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계몽적인 결론 - 각 에피소드 말미에 '남성과 여성이 건강하고 당당하게 성생활을 즐겨야 한다, 그러니 부인을 존중해라'라고 자주 첨가되는 어르신들의 교훈- 은, 지금 이 시대에 성에 대해 접근하는 하나의 입장을 보여준다.

과거의 여성들을 그린 이 만화는 현실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출발하여 과거에서 그 근거를 끌어온 다음 현실로 돌아왔다. [색녀열전]의 입장은 언뜻 보면 성평등적인데, 그 성평등은 개인의 행동 변화에 의해 쉽게 성취되는 것이며, ‘성은 두 주체가 공평하게 추구하는 영역이다’라는 단순한 전제에 기대고 있다. 단순한 것 까지는 좋은데, 성이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력을 간과하다 보니 자연히 ‘성욕의 추구’에 대한 상상력이 남성들의 그것과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성욕이 있고 그 성욕 추구하다 보니 좌충우돌, 우당탕탕 사건이 생기고, 결국에는 잘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하다면, 무슨 입장이 더 필요했을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페미니즘이 성별체계에 따른 구조적인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에, 가려진 성별 권력관계로 인한 과거 여성들의 문제적인 상황 및 여성들의 심리가 페미니즘 성 담론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여성들이 유교 도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제약이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 제약과 타협하거나 저항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여성이 성생활에서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겪었을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특수하게 형성되는 여성심리나 자의식은 어떤 형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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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색녀열전]이 가진 장점은 십분 인정한다. [색녀열전]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혹은! 만화책을 처음 읽어보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여자도 이렇게 자유롭게 성을 말하고 즐길 수 있구나, 혹은 만화가 이렇게 계몽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체가 될 수 있구나, 라는 인상을 가볍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작점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만화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론이 현실에는 없다. 현실 속의 여성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보다 다층적이고 풍부한 시선이 필요하다. [색녀열전]의 뒷면에 찍혀있는, 어느 남자만화가가 쓴 '처음에는 여성주의적 만화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라는 말이 [색녀열전]의 장점과 한계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 작품목록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1-완, 한겨레 신문사, 2003

* 삽화 목록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1-완, 김상복 지음, 장차현실 그림, 21세기북스, 2004
[우멍거지 이야기] 1-완, 김대식 외 지음, 장차현실 그림, 이슈투데이, 2002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1-완,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보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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