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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03 두 개의 여성만화, 대담과 잡상 « 이전글 | 다음글 »
 
[담대한대담] '여성만화'에 대한 무책임한 내부방담 대공개
| 2004년 10월 17일에 여성만화프로젝트 쓴 글
 
 

뭔데? 들어오는 사람 없는 여성만화 프로젝트의 NO.03 대담
참석자 : 메리메리, 매울신, 야생, 난나, 깜악귀
날자 : 2004년 9월 2일

#서두로 한국 ‘여성만화’의 성취와 공백에 대해 잠시 논의함

메리메리 : No.03 특집의 의도는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보다 리얼하게 반영하는 만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현재 여성만화의 공백을 점검해보자는 것이었죠.

깜악귀 : 그리고 이 방담의 의도는 그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것을 컷트 없이 그냥 올려보자는 거지. 뭐 이 대담에서 떠들어대는 말들은 모두 무책임한 말이고 논리적인 책임은 있을 지언정 도덕적인 책임은 없다는 말임.

난나 : 한국여성만화에서 부족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메리메리 : 허브를 보면서 느낀 건데 우선 기대할 만한 신인이 수적으로 줄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항상 그랬다고는 하지만. 오래된 작가들의 경우 했던 이야기를 계속 한다는 인상이 드는데 힘이 많이 줄었다고 할까. 현재 사회의 풍속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힘 있게 전달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신인은 없고..

깜악귀 : 제 생각에는 80년대의 작가들이 90년대로 오면서 좀 더 자기 연령대에 맞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가능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10대들에게 읽힐 만화만 그리고 있으니 힘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지도.

메리메리 : 그런데 10대의 이야기를 그릴 때도 요즘 10대를 알지 못하니까, 자기 10대였던 때의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죠. 순정만화 작업방식의 문제인 거 같기도 한데. 리얼하게 그릴 수 있는 것은 화실일기 정도가 되어버리는..

난나 : 현실적인 것에 만화가들이 너무 무관심한 것도 큰 거 같아요. 다른 것에 관심이 너무 없는 거야.

매울신 : 주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만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도 충분히 소재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탐구심의 부재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난나 : 작가들이 인물들을 그릴 때 있어서 자신들의 10대 시절의 우상이나 감성을 가지고 그대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에 감성이나 사고방식이 발전하질 않는 거예요. 현실 이야기를 그리자니 현실 소재 자체가 너무 추레하고 매력도 없고요. 이은혜가 대표적인 예지요. 더해서, 순정만화의 장식적인 성격 때문에 현실 이야기를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들도 그 그림체 때문에 자기 연령대에 맞는 현실의 삶을 담아내는 것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김지윤을 아주 높이 평가하는데, 현실 삶의 소재를 어떻게든 담아내면서, 순정만화의 그림체를 가지고 있고, 그 두 사이를 잘 융화하거든요. 결혼, 임신, 육아, 출산 등의 리얼함을 보면 페미니즘적이거나 리얼리즘적이려고 애써 노력한 작품들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해요.

작가들이 지닌 환타지에 실제 삶이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단순한 동경이나 강렬한 욕망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다가 힘이 빠지기 쉽죠.

매울신 : 발표 매체가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요. 김미영 씨의 작품 같은 경우 스포츠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데, 스포츠 신문의 전형적인 틀 안에서 약간 색다른 시도 정도로 평가되서 아쉬워요. 만약 그 만화가 다른 지면에 연재되었다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적으로 여건이 작가를 제어하는 면이 있지요.


#요시나가 후미 - 타고난 이야기꾼이 그리는 여성용 소프트 포르노 드라마 (온 가족이 시청할 만한)

깜악귀 : 후미 같은 작가가 한국에 있나?
다들 : 없어.

야생 : 한국에도 야한 걸 잘 그리는 작가가 있으면 좋겠어.
메리메리 : 맞아. [의욕 가득한 민법] 같은 걸 보면 얼마나 섹스 장면이 멋진데. 옷 벗었다고 다 야한 건 아니죠. 그리고 감성 면에서도 강간 판타지에 의존하는 면이 크고요.

매울신 : 아름답게 그리건 거칠게 그리건 좀 더 탐구심이 있어야 하는데, 구도도 다 비슷비슷하고. 구도에 따라서 감정묘사가 다 달라지는 건데. 여자의 몸도 다 다른데, 모든 사람이 다 슈퍼모델인데 그런 거 지겹잖아요. [색녀열전]은 사실 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깜악귀:그래서, 후미 같은 작가가 한국에 필요한 이유가 섹스를 잘 그리기 때문이라고?(--;)

메리메리 : 설마. 만화를 그렇게 드라마적으로 잘 그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한 것.

매울신 : 특별히 후미가 필요한 건 아니고, 삶과 연관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현실적이고 재미있게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거지요.

일본 현실이랑 우리나라 현실이랑 다르다고 하지만 감성이나 정서도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작가들의 역량이 얼마나 탄탄한가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작가들이 좀 더 작품에 무엇을 담을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시장도 크고.

난나 : 드라마만 봐도 요즘 한국 드라마 얼마나 진보했어요? [네 멋대로 해라]나 [천생연분] 같은 거요, 그런데 그런 그냥 당연히 존재해야 할 이야기가 만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거죠.

매울신 : [꽃보다 아름다워],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만화가 있으면 참 좋겠는데.

메리메리 : 김지윤이 잘 하면 만화의 [천생연분] 같은 거 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깜악귀 : 후미는 현실감각과 쾌락적인 부분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결합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 대해 예리하게 포착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고.

메리메리 : 현실적인 연애물도 좀 있으면 좋겠어. 그런,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이 왜 없는 거죠?

깜악귀 : 근데 나오면 팔릴까?

매울신 : 잘 짜여진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팔린다고 봐요.

깜악귀 : 근데 사람들이 만화에 그런 걸 요구하지 않는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이야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그걸 원할 때는 그냥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된다는 거지.

매울신 : 만화를 좋은 문화산업의 재료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도 좀 문제 같아요.

난나 : 만화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 예전에 패션잡지가 망하는 건 말도 안 되었는데, 요즘은 퍠션잡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출판계가 불황은 불황인 거 같아요. 출판물 시장이 호황이면 좀 더 다양한 걸 시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깜악귀 : 이야기가 현실적인 재미를 주지 못하는 건 호황도 구원 못 해.

매울신 ; 그냥 저는 스토리 작가가 붙는 것도 해법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만화를 그리는데 만도 엄청난 시간이 든다면. 이야기 구성력 탄탄하고 소재를 잘 활용하고, 그런 작품이 나와 주었으면. 드라마나 영화 다 시나리오 작가가 따로 있잖아요.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당연하게 하는 것이 안 된다 이거죠.

깜악귀 : 그러게. 근데 만화시나리오 작가의 역량이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건 사실이야. 오히려 대본소 만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능력이 개중 뛰어나다구. 플롯의 기본도 없는 경우도 많아. 시나리오 작법 책 정도는 좀 뒤져보라구.


# 한혜연 - 정체된 플롯과 살아 움직이는 디테일

메리메리 : 한혜연은 이야기의 앞뒤가 잘 맞고 흠잡을 구석이 없지만 이야기 자체로서의 긴장감은 없는 거 같아. 정성스럽긴 한데 역동성이 없어.

난나 : 캐릭터에 정성을 많이 쏟는 편이죠. 미스테리는 상당히 뻔한 이야기들이었는데, 그것에 반응하는 여자들의 순간을 잡아내는 부분이 상당히 성숙해 있었죠. 인물들의 성숙함이 주는 느낌이 작가를 귀하게 했어요. 사건들도 일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종류의 것이었고요.

메리메리 : 한혜연 만화의 연애에는 쾌락이 없지요.

깜악귀 : 플롯이라고 할 만한 것이 부재하지. 하지만 주목할 것은 디테일이야.

메리메리: 맞아. 여자들이 머리핀 꽂는 장면이나 머리핀 가게 같은 소재를 절묘하게 포착하는 게 장점이죠. 밤에 갑자기 막걸리 먹고 싶다고 친구가 찾아오는 장면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여성들의 경험과 욕망을 아주 잘 포착한다구. 설명조가 아니고, 그냥 머리핀 하나를 정교하게 그려서 클로즈업 하는 것만으로도.

매울신 : 왜 이 사람이랑 티격태격하다가 사귀게 되었는가, 왜 이렇게 못 헤어지는가 같은 사람들이 부닥치면서 마찰하는 부분이 없어요. 갈등이나 사건이 없으니 긴장감도 없고요. 그렇게 극을 끌어나가는데도 읽히는 것은 아까 말한 사소한 부분들의 포착 덕분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다들 생각은 하지만 신경은 쓰지 않아서 그걸 끄집어냈을 때 그 중요성을 알게 되는 거죠. 여성의 일상적인 감각들을 잘 포착해서 끄집어내는 거 같아요.

깜악귀 : 반면 후미는 플롯이나 티격태격하는 것에 대단히 능수능란하지요. 훌륭한 요리사지.

매울신 : 한혜연은 처음부터 감정이나 이런 걸 설정하고, 예는 이래, 쟤는 이래, 하는 식이죠. 입체성은 없어요. 나나난은 설명을 하지 않고 묘사나 행동으로 추측하게 하고.


#나나난 키리코 - 나나난 키리코의 렌즈

메리메리 : 자신이 절망적인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작가 자신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는 것은 장점이죠.

난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성숙해요. 작품은 각자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때 완성도가 높죠. 여자들의 열등감이나 패배의식 같은 소재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이 아닌데도 그걸 매력 있게 그렸다.

깜악귀 : 나나난의 장점은 형식미를 충분히 연구해서 감정 선을 얼마나 증폭 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는 거지. 대놓고 드러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우리나라 작가들의 제일 문제가 설명조라는 건데.. 자기가 얼마나 지금 힘든지 주절주절하는 거. 나나난은 말 없이 드러내기 위한 형식을 굉장히 연구한 거 같아. 효과가 상당하지.

그리고 최근 작품으로 갈수록 형식미가 더욱 커지거든. [딸기 쇼트케이크]에서 몽타쥬 기법을 쓰는 걸 보고 진짜 놀랐다. 섹스할 때 계단 올라가는 장면이 교차되서 그려지는데 보통 실험주의 만화에서 ‘나 이런 거 써봤어’ 라는 식으로 쓰 정도에 그치는 걸, 나나난은 자연스럽게 아주 잘 써먹은 것 같아. 보통 우리나라 작가가 이런 시도를 하면 생소하거나 스스로 자기 이런 형식 떠봤다고 떠벌리고 싶어 미치는 게 작품에 보이는데. 자기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만큼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멋진 것 같아.

메리: 나나난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지자기 감정만 그리고 있다고 별로라고도 하고 각자 취향인 듯.

깜악귀 : 어떤 부분만을 강화해서 그려내는 것 자체가 그게 스타일이 되는 거지, 인간은 나름의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거지. 스타일은 현실을 왜곡하지만, 그걸로 현실의 욕망이나 감각을 더욱 잘 볼 수도 있지. 돋보기는 현실을 왜곡하지만 그걸로 현실을 더욱 잘 보게 되잖아. 스타일의 작용이 그런 거 아닐까. 하지만 렌즈가 두꺼울수록 사람들이 쓰기가 어려워 질 수도 있듯 과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결국 스타일이란 현실을 어떻게 취사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일 거야. 그림체나 플롯, 그리고 작품의 내용까지도 모두 스타일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나나난은 한 가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자기 작품을 계속 발전시켜왔는데, 보통 그렇게까지 발전시킨 작가가 있나? 지치거나 다른 걸 하게 되지. 그리고 되풀이해서 하나의 이야기의 완성도를 계속 올려놓았지.

물론 계속 인물들 간에 싸움 붙여서 이야기의 재미를 끌어나가는..그런 것도 있지. 이 경우는 만화에 바라는 게 별로 없는 경우지만. [풀 하우스]라든가..

난나: [풀하우스]는 여자들의 거지 근성을 잘 나타내는 최고의 만화. 남자도 잘 모르고 여자도 잘 모른다.

깜악귀 : 라이더는 쓸개를 빼주면서 사랑을 증명하는 남자 같잖아요. 동시에 유명한 영화배우이고. 사실 풀 하우스가 여자들이 연애에서 바라는 바를 잘 짚어내는 것 같긴 하지만, 여자는 잘 알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많이들 좋아하는데. 나도 재미는 있었어. 다만 엘리라는 캐릭터가 무지 짜증나긴 했지만. 페미니스트 신데렐라랄까, "저 남자는 나의 페미니즘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어"라는 명대사가 있지.

메리: 진짜? 그런 대사가 있어?

깜악귀 : 그럼.

메리 : 맙소사.. (얼굴을 가린다) 좌우간 밀고 당기는 것만큼은 잘 그렸다. 계속 둘만 밀고 당기지. 그 이유는 이해가 안가지만.

깜악귀: 사귀다 정 떨어져서 밀고 당기는 수도 있고, 그런 다각도의 감정을 그리지 않는 거지. 남자 캐릭터도 한정적이야야. 세상에 남자도 많고 여자도 많은데 말이지. 현실에 입각하면 훨씬 다양하고 세심한 환타지가 가능할 텐데. 왜 그렇게 한정된 드라마만 그리냐 이거야.

매울신: 섹스 장면이나 진도 나가는데 너무 인색하지. 왜 그렇게 손만 잡고 집에 가.

난나: 드라마는 전국민이 본다는 무차별성 때문에 제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만화는 왜 그러는 거지?

매울신: 인색하다는 생각. 내숭이야.

난나: 내숭에 거지 근성, 난리다 난리.

깜악귀 : 연애에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은데 그 단순한 플롯과 쾌락만 죽어라 반복해서 그리는지 모르겠다.

깜악귀 : 요즘 10대 만화는 어때?

메리 : 좀더 적극적이 된 것도 있긴 하지만. [궁] 같은 거 보면,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 등에 손을 가져다 대잖아. 그래도 결국은 그것밖에 없다고.

난나: 순정만화 작가들이 너무 유치한지, 인간적으로 성숙이 덜 됐는지, 감정의 희노애락의 근거가 너무 부족한 거야. 남이 잘해주면 당장 좋고 잘 안해주면 당장 안 좋고, 그 중간의 감정이 없는 거지,

깜악귀: (얼굴을 진지하게 꾸며대며) 난나님이 그렇게 그려주세요.

난나: 네...(수줍은 목소리로)

깜악귀 : 미묘한 감정들은 많을 텐데.

난나: 예전에 한국 청소년 영화를 보면 자살하는 이유는 2개밖에 없지. 성적과 부모님의 오해. 그런 식이야. 여전히.


# 장차현실 - 조선시대 여자들도 색을 밝혔다? 당연하잖아!

깜악귀 : 자, 이제 정치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메리: [색녀열전]은 재미없어. 별로 정치적인 지도 모르겠어,

난나: [색녀열전]의 스토리 작가는 굉장히 페미니스트인데.

깜악귀 : 이우일이 만화에서 성기 노출을 할 때 단순히 성기 노출을 해서 충격적인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혐오랄까, 성을 표현하는 것에 자기만의 감각이 있었지요. [색녀 열전]의 야한 장면은 ‘그런 게 있어요’라는 식의, 옛날 이야기일 뿐인데 그것만으로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아요. 그냥 여자도 밝힐 줄 안다는 식의 라는 음담패설…남성 환타지에 그건 이미 있지.

메리 : 그런 건 좀 다르지. 남성 환타지에 잇는 건 여자를 유혹하는 의미잖아. [색녀열전]의 경우 여자가 성을 밝히는데, 너무 재미없고 건전하게 밝혀. 결과적으로 [색녀열전] 같은 스타일은 별로 파괴력이 없어.

매울신 : 만화를 하나도 안 본 사람들은 들춰보고 척 보기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뭔가 신선한 컨셉인 것 같잖아.

깜악귀: 지금 우리에게 조선 시대에 밝히는 여자가 몇 있었다고 해서 충격적일 건 없잖아요. 어우동도 있는데.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모를까. 지금 섹스 이야기가 충격적인 시대가 아니라구.


# 이진경 - 박찬호라고?

매울신 : 그러면 이진경은 어떤가.

깜악귀 : 이진경이 주목받은 건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대학물 먹었다는 게 명확한 작가가 없었기 때문이죠. 사실 그 이전 작가의 예술적 자의식이라는 건 그냥 단순히.."우린 장인이다" 정도거든요. 보통 현대적 의미의 아티스트라는 건 장인이랑 오히려 대척점에 있다구.

좌우간 이진경의 [사춘기] 같은 만화에는 90년대 후반의 대학에 대한 지적인 성찰과 묘사가 담겨져 있었고 페미니즘적인 의식도 있었기에, 90년대 초반 학번이 운동에 대해 가질만한 애정이 실사적으로 드러났죠. 문화적으로도 높고. 유시진이나 권교정 등 좀 괜찮은 대학 나와서 만화 그리기 시작한 여성 작가의 프론트랄까. 만화판에 고등교육을 받은 게 당연한, 여성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프론트가 이진경이었다는 거야. 앞선 만화선배들과 뚜렷하게 달랐어.

난나: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연령을 그리고 있고, 미술이나 사진 같은 것도 잘 쓴다.

깜악귀 : 그런 것들을 드라마적으로 능숙적으로 이끌어가는 건 아니죠.

매울신 : 스타일로 끌어들이고 나레이션으로 밀어 부친다.

깜악귀 : 구도는 미술적으로 잡고 나레이션은 문학적으로 깔아버리니 만화적인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

메리 : 대사가 탁탁 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같다.

매울신 : 사춘기에 서군대 고학번 남자애랑 싸우는 걸 보면, 거기서는 대화가 안 끊기고 툭툭 치잖아요. 그건 이진경의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시도가 참 좋다고 생각해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가서 연애질만 하는 게 아니죠.

깜악귀 : 이진경 캐릭터에는 입체성이 거의 없죠. 극화로서의 재미가 별로 없어. 이진경이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만화에 드러나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낄 순 있는데 말야. 아트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에 감화되거나 퀴어적 코드에 감화가 될 수는 있지. 하지만 완결한 작품이 없잖아.

난나: 생각은 진보적이지만, 만화를 계속할 뚝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이진경 개인은 흥미롭지만, 만화가로서는, 글쎄요.

깜악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었죠.

메리메리: [피플]은 그림으로도 볼만했지.

깜: 이진경은 만화로서 사고하기 보다는 이미지와 문장으로 사고해.

난나: 이진경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코드야.

깜악귀 : 이진경은 마초의 얼굴과 말투를 아주 리얼하게 잡아낸 그런 업적이 있지.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본 작가가 ,없었지.

메리 : 유시진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있지 않아?

깜악귀 : 별로 리얼하진 않다. 결코 마주보고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사춘기]는 나인이 폐간되기 전에 그만두지 않았나. 완결된 작품이 하나밖에 없는 작가인데, 힘을 보여주기에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최근의 박찬호처럼. 흠.


# 정송희 - 상처와 상상력

깜악귀 : 상상력의 부족.

난나 : 그림체가 더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도 있고.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우울하게 되돌아보는 것도 상상력이 필요한 거 아닐까나.

메리: 책 서문에 인간관계들의 미세한 부분을 드러내면 좋겠다고 써놓았는데, 만화를 봤는데, 작은 부분을 너무 과도하게 던지는 것 같아. 좋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깜악귀 : 정송희는 애매한 데가 있는데, 시선이 너무 나이브해. 스스로가 자신이 포착한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브해. 그리고 자신의 경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다른 인간'이 존재하질 않아. 그러려면 '자신의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해서는 곤란한데.

메리 : 물론 소재 자체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깜악귀 : 근데 단행본이 2000년대에 나왔으니. 그 때 나왔더라면 좋았겠지. 하여튼 난 상처는 상상력이 날아오르는 통로라고 생각해. 정송희의 경우에는 좀 방어적인 면이 그걸 제약하는 건지. 흠.


# 토노 - 아기자기한 계몽성

깜악귀 : [칼바니아 이야기] 같은 것도 한계는 있지. 물론 여성으로서 가지게 되는 정치성이라고 해야 하나, 여성의 사회적 불합리를 잘 묘사하고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토노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여성에 대한 편견 플러스 사랑에 대한 편견, 소수자에 대한 편견. 토노의 만화에서 등장하는 '요괴'는 모두 어떤 인종적, 성적 소수자를 반영하는 거 같거든. -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존재라는 정도의 차이이다. 어쩔 것인가? 이런 명제를 던지지. [치키타 구구]에서처럼. 이 작가 만화의 핵심은 결국 이거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는 존재이고, 서로를 살해하고 포식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그 양자에 대해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메리 : 작가가 인간중심주의를 싫어하지. 그래도 [칼바니아 이야기]에 법과 제도가 별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나는 잘 모르겠다. 좀 소꿉장난 같아.

매울신 :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죠. 시대는 다르지만 고민이나 갈등이 지금 시대에서도 볼 수 있이고.

깜악귀 : 나는 아주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만화에서는 별로 풀린 게 없고 개선된 것도 없어. 주인공은 여왕으로서 존재를 인정받긴 했지만, 제대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지. 서자에 대한 편견도 그대로 존재하고. 스토리 자체는 날림이긴 하지지만 성숙한 해답을 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나는 대단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라고 하고서 충분히 재미있게 그려내. 개량적인 면모는 많지만.

매울신 : 조연급 사람들이 괜찮게 등장한다는 것도 장점이죠.

(난나, 자고 있다)

깜악귀 : 아아 대담 끝인가. 끝내자,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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